청구권 협정에 관한 오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관해서는 수많은 오해와 이설이 난무합니다. 흔한 비판으로, 박정희 정부가 서둘러 타결 짓느라 청구권의 극히 일부 밖에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하면서 굴욕 매국 외교였다고 합니다. 35년간 지배당한 우리가 받은 청구권 금액, 무상 3억 달러가 불과 3~5년 점령당했을 뿐인 동남아 나라들에 비해 너무 적다고도 하지요. 필리핀은 일본으로부터 5억 5000만 달러를 인도네시아는 2억 2300만 달러를 받았으므로 단순 비교하면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한국 대법원은 최근 일본에 대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으므로 새로 배상하라는 판결도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일본이 제대로 배상 보상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한국은 더 청구할 게 있다는 인식입니다. 아마도 현재 대다 수 한국인의 생각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틀렸습니다. 애당초 한국 측이 청구 할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일협정으로 일체의 청구권이 완전히 정리되었습니다. 이게 팩트입니다.
한국법인 또는 한국 자연인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일본국채 공채, 일본은행권,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기타 청구권을 변제하라는 것입니다. 즉, 한국에 있는 법인이나 한국인 개인이 갖고 있는 상기 재산을 반환하라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한국이 받을 게 꽤 많아 보이죠?
청구권 협정은 한일 간 상호 재산, 채권채무의 조정
우선, 한국이 일본에 청구할 게 별로 없었다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과거 청구권 교섭 때, 한국이 식민지 피해에 대한 배상을 주장할 수 있었다면, 큰 금액을 청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3.1 운동 때 제암리교회 방화사건으로 많은 한국인이 죽었습니다. 일제 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한글학자들이 부당하게 구속 고문을 받았습니다. 쌀을 강제로 공출당하기도 했고, 징용령과 징병령이 발동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식민지배 아래서의 부당한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에 대해 배상을 받는다면 막대한 금액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국제법, 국제 관계에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배상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한국이 배상받으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태평양전쟁의 전후처리 조약, 즉 1951년 9월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 간 평화조약, 샌프란시스코조약 때문입니다.
이 조약의 제4조에는 한일 양국 간 재산 청구권을 특별조정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미 군정이 한국내 일인 재산을 몰수한 것을 승인한다고도 했습니다. 제14조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대한 전승배상금을 포기한다고 했습니다.
이 평화조약에서 한국은 일본에 대한 전승국도 아니고 일본의 식민지 피해국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일본 에서 분리된 지역'이었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재산권 청구는 민사상의 일
이 한국의 국제 법적 지위가 청구권 교섭의 틀을 결정했습니다. 전승국이나 식민지 피해국이라면 일방적 배상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은 과거에 일본의 일부였다가 이제 일본에서 분리되었으므로 양국 국가와 국민 간에 재산 및 청구권을 상호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상호 간에 민사상 재산의 반환, 채권의 상환을 처리하라는 게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말한 '특별조정'의 뜻입니다. 한국민 청구권을 가진 게 아니라 일본에도 청구권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도 이러한 흐름을 알았기에 1949년 봄과 가을에 「대 일배상요구조서」를 작성하면서 피해 배상이 아니라 재산 반환에 대한 청구를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1951년 가을 이승만 정부는 한 일회담을 앞두고 그를 대일 8개 항 요구로 정리했습니다.
8개 항 중 1번은 한국에서 가져간 고서적, 미술품, 골동품, 기타 국보, 지도원판, 지금, 지은을 반환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지금, 지은이란 한국 내에서 채굴되어 정련된 금과 은 덩어리로서 일본에 반출된 것을 말합니다. 그걸 반환하라고 요구한 겁니다.
4번을 보면 1945년 8월 9일 현재 한국에 본사 또는 주된 사무소가 있는 법인의 재일재산의 반환으로 되어 있습니다. 8월 9일은 일본이 항복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한 날인데요. 그날 기준으로 해서 한국에 본사나 주된 사무소가 있는 회사가 일본에 갖고 있던 재산을 반환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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