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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엉터리 수탈설과 전통문화에 관하여

by 스튜디오윤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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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설의 뿌리는 전통문화

교과서를 집필한 역사가나 엉터리 학술서를 편찬한 연구자는 일제가 조선을 지배한 목적, 메커니즘, 결과, 그 역사적 의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토지만이 아니라 식량도, 노동력도, 나아가 처녀의 성도 수탈되었다고 교과서에 썼습니다. 그 모두 엉터리 학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런 엉터리 학설이 이 대명천지에 공공연히 횡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학설의 계보를 추적하면 그런 피해의식은 일제강점기 그때부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더 깊이 캐 올 나가면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들이 엉터리 학설을 만들어 낸 것은 무슨 사악한 의도에서라기보다 부지불식간에 그들이 어릴 때부터 호흡해 온,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문화에 이끌려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용삼의 글에 찾은 쇠말뚝에 관하여

김용삼의 쇠말뚝 소동에 관한 글에서 그 좋은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청와대까지 나서 서전국의 요처에 박힌 쇠말뚝을 뽑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은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실은 인근 마을이 또는 군부대가 무슨 필요에 의해서 박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몇 사람의 풍수가가 지어낸 그 같은 주장에 따라 어처구니없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우리 한국인의 의식 속에 면면히 흘러오는, 땅에는 선하거나 악한 기맥이 흐른다는 풍수지리의 영향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김용삼은 매우 흥미롭게도 그런 소동이 일제강점기부터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토지조사사업 당시 일제는 전국의 측량을 위해 부산에서 함경북도까지 이어지는 삼각점을 설치하였습니다. 대삼각점만 해도 2,400여 개에 달했습니다. 그것을 당시의 조선인이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조선의 혈맥을 찌른 것이라고 오해하여 자주 파괴했다는 겁니다. 관련하여 어느 분이 제게 어릴 적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제가 마을 뒷산에 삼각점을 박았는데, 마을 사람이 밤에 올라가 그것을 부수니 그 밑에서 피가 솟았다는 겁니다. 장군이 태어날 자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선의 전통문화는 일제의 토지 측량을 풍수의 침략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제가 읽은 전남 고흥의 어느 양반의 일기는 마을 앞을 통과하는 철로가 부설되자 더없이 개탄하였습니다. "저 것이 우리의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하고 말입니다. 철로 부설에 많은 토지가 수용되고 또 마을의 당산나무까지 잘려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제가 펼친 각종 행정이나 시설은 전통문화, 전통 풍수, 전통 터부에 대한 파괴로 간주되고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겨난 피해의식과 분노가 해방 후 역사가에 의해 토지, 식량, 노동력에 대한 수탈의 역사로 포장되고 부풀려져 왔던 것입니다.

 

쇠말뚝과 샤머니즘

쇠말뚝 소동이 벌어졌을 때 제가 조금 전에 비판의 표적으로 삼은 신용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여러분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논리적으로 실증 적으로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이 버젓이 용납되는 가운데 청와대까지 나서서 쇠말뚝을 뽑는 소동을 벌였음은 1995년 당시까지도 한국의 정신문화가 토지에 기맥이 흐른다는 전통 풍수와 그 토대를 이루는 샤머니즘의 세계에 얼마나 깊숙이 긴박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1960 이후 50년간 한국의 국사 교과서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벌여 전국 토지의 40% 수탈했다고 왔습니다. 일본과 조선을 뺏고 때앗기는, 죽이고 죽는 야만의 종족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조상을 소유권 의식도 없고 신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선량한 종족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선량한조선 종족을 사악한 일본 종족은 손에는 피스톨을, 다른 손에는 측량기를 들고 마구잡이로 수탈한 것입니다. 조선인은 토지의 측량 을 위해 일본이 설치한 대소 삼각점을 토지의 혈맥을 찌른 것으로 알고 분노했습니다. 국사 교과서의 터무니없는 토지 수탈설은 이렇게 우리의 전통문화에 규정된 낮은 수준의 역사의식, 반일 종족 주의에 기초를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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