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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과연 강제노동 노예노동은 있었던 것인가?

by 스튜디오윤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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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노예처럼 일했다

일제 말기에 적지 않은 조선인이 노무자로 동원되어 일본으로 갔습니다. 위의 소제목은 그에 관한 우리 국민의 상식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강제연행설이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학계의 일반적 의견이며, 국민적 상식입니다. 강제연행설을 처음으로 주장 한 박경식은 많게는 하루 20시간을 일했지만, 임금은 “현금으로 주지 않고 모두 저금" 시켜서 "송금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수 준이었고, 자기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 수준"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임금 자체가 일본인 노동자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탄광의 갱내 노동과 같이 가장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고, 구타, 집단적 린치와 감금이 일상이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강제노동 노예노동이었다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거의 모든 연구자들은 똑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전기호 교수는 일본인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조선인들이 하도록 강제로 배치하고, 임금에서 소액의 용돈을 뺀 나머지 모두를 강제로 저금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민족적 임금 차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와 함께 '채찍과 폭력', 그리고 '감금'을 통해 '자유와 자율이 전혀 없이 조선인을 죄수로, 노예로 대우했다고 했습니다.

 

강제노역은 없었고 일본인도 동일했다

대부분 반일 종족주의 입장에 기초하여 수행된 한국의 연구, 그리고 일본의 소위 양심적인 지식인, 사회단체 사람들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과장을 넘어서 역사왜곡, 솔직히 말해 날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은 정상적으로 지불되었습니다. 분명 강세 저축이 있었지만, 그것은 일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정상적으로 이자와 함께 저축액을 모두 인출 했고, 조선에 있는 가족에게 사고 없이 송금할 수 있었습니다.

임금은 기본적으로 성과급이었습니다. 일본인도 마찬가지였습 니다. 따라서 일본인보다 임금이 높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본인 보다 임금이 낮은 경우는 대부분 조선인들이 탄광 작업의 경험이 없어 생산량이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업무 중 구타와 같은 전근대적 노무관리가 전혀 없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활은 대단히 자유로웠습니다. 밤새워 화투를 쳐 잠을 설친다거나, 근무가 끝나면 시내로 나가 과음하고 다음날 출근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선 여인이 있는 소위 '특별위안소'이라는 곳에서 월급을 모두 탕진할 정도로 그들은 자유로웠습니다.

 

사진작가 사이토 고이치 씨의 사진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전광판 으로 영화 <군함도>를 광고하였습니다. 엎드려 탄 캐는 조선인의 모습이라며 그가 광고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반일 종족주 의에 경도된, '작업상의 또는 작업배치상의 민족차별' 주장하는 구자들의 시각을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 또한 국립일제강 제동원역사관에 전시되어 있고, 중학교 교과서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이 사진 역시 전쟁 때 일본으로 갔던 조선인의 사진이 아닙니다.

이 사진은 실제로는 일본의 사진작가 사이토 고이치 씨가 1950 년대 중반 가난한 일본 서민의 삶을 담는다는 목적으로 치쿠호우

탄전지대의 한 폐광에서 석탄을 도굴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입니다. 사이토 씨는 그 필름을 지금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연구기관, 국가기관과 서경덕 씨가 일본인의 초상권이 사이토 씨의 저작권을 무시한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미국 까지 날아가 일본인을 한국인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우리가 이렇게 당했다며 엉뚱한 사진을 내걸고 선전한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제적 망신이 아닐 없습니다. 한국의 반일 종족주의를 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이토 씨는 년에 국립역사관을 방문해 항의하며 전시 중단을 요구했지만, 역사관 측에서는 강제동원의 실상이 기본적으로 그와 같으므로 계속 시할 것을 고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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