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의 산업 재해율
반일 종족주의에 빠진 노무동원 관계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작업상의 또는 작업배치상의 민족차별'에 대해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산업재해율, 즉 작업 중 사망률과 부상률에 있어서 조선인 쪽이 일본인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1939년 1월부터
1945년 12월까지 사할린을 포함한 일본 본토의 탄광에서 사망한 광부는 모두 10,330명이었습니다.
1943년, 일본 주요 탄광에서의 사망률을 보면 조선인이 일본 인보다 두 배 가량 더 높았습니다. 같은 해, 탄광 광부 중 조선인은
11만 3천여 명이었습니다. 일본인은 22만 3천여 명이었습니다.
군인으로 징병된 일본인들은 모두 청장년층이었고, 이것은 탄광에 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탄광으로부터 징병된 일본인들은 갱외부보다는 갱내부, 갱내부 중에서도 비교적 강한 완력을 갖고서 더 위험한 작업에 종사했던 채탄부, 굴진부, 지주부 출신자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탄광에서 이 빈자리를 메운 것이 바로 조선에서 건너온 청년들이었습니다. 일본 본사에서 조선으로 파견된 일본인들은 당연히 완력이 세고 위험한 작업도 감당할 수 있는 건장한 조선 청년들을 모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탄광에서의 작업배치 즉 직종 분포는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1943년에 일본인은 60%가 갱내 부였는데, 조선인은 무려 92%가 갱 내부였습니다.
조선인의 작업과 육체적 특성
지금까지 말씀드린 상황을 고려하면, 조선인의 재해율 즉, 사망률이나 중상률이 일본인보다 높았던 것은 조선인이 수행하는 작업과 조선 근로자의 육체적 특성이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전쟁 이전에도 일본의 대규모 탄광회사는 조선에서 광부를 모집하여 채용했습니다. 이때도 조선인들의 갱내부 비율과 갱내부 중 3개 중요 작업을 담당하는 광부들의 비율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전쟁 기간과 동일하게 일본인 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젊고 건장한 조선 청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갱 내부 중에서도 채탄부, 굴진부, 지주부 3개 작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일본인의 경우 38%에 불과하였지만, 조선인은 70% 이상이었습니다. 이 3개 작업을 맡은 조선인의 비율은 일본인보다 1.9배나 높았습니다. 그 결과 가장 위험한 작업을 맡은 조선인들의 비율은 일본인들보다 2배나 높았고, 조선인의 사망률이 일본인의 2배에 가깝게 된 것입니다.
1941년, 홋카이도 6개 주요 탄광의 경우에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A탄광과 P탄광의 조선인은 갱내부가 갱외부보다 1.4 배 많았습니다. 6개 탄광의 조선인 사망률과 일본인 사망률 사이의 비율을 계산해 보면,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최저 1.3배에서 최대 3.0 배 더 높았습니다. 그런데 A와 P탄광에서는 조선인의 사망률이 일본인보다 1.4배 정도 더 높았습니다.
탄광의 노동수요와 조선의 노동공급의 결과
사망률과 중상률의 합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갱내부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또 갱내부 중 3개 중요 작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사망이나 부상과 같은 재해가 발생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요컨대 조선인의 재해율이 높은 것은 인위적인 민족차별'이 아니라, 탄광의 노동수요와 조선의 노동공급이 맞아떨어진 불가피한 결과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조선인의 높은 재해율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조선인을 험한 곳으로 고의로 떠밀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한 세대 앞서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그 조상들의 행동에 대 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전시기 작업배치상의 민족차별 문제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이 맞아떨어진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입니다.
근로환경에 있어서의 민족차별'이라는 주장은 많은 경험자들의 증언에 반대됩니다. 또한 석탄 광업에 대한 무지, 또 당시의 기술에 대한 무지로 인해 사실과 부합하지 않거니와 논리적으로도 합당하 지 못합니다. 결국 '근로환경에 있어서의 민족차별'이라는 주장은 상상의 산물이며 역사왜곡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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