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다수결에 의해 '일제가 박은 쇠말뚝'으로 결정
그런데 전 영춘면장이자 현지 주민인 우계홍 씨는 저에게 "그것은 일제가 박은 게 아니라 해방 후에 주민들이 북벽 아래 뱃줄을 묶기 위해 박아놓은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우계홍 씨는 "군청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귀담아듣지 않는 바람에 일제가 박은 쇠말뚝으로 둔갑하고 말았다"라고 허탈해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고 4리 조울재에서도 쇠말뚝이 제거됐습니다. 이 쇠말뚝은 1995년 6월 13일에 발견됐는데, 광복 50주년 기념 이벤트 행사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두 달을 미뤘다가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에 드라마틱하게 제거됐습니다.
제가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해보니 제거된 쇠말뚝은 길이가 볼펜보다 조금 큰 정도였습니다. 명당의 혈을 지르기 위해 박았다고 보기에 는 크기가 너무 작았던 것이죠. 제보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어숭이 박았다는 설과, 일제가 한일합방 후 박았다는 설 등 두 가지가 있었는데, 일제가 박았다는 사람이 더 많아 제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민들의 다수결에 의해 일제가 박은 쇠말뚝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강원도 양구군에서는 모두 세 개의 쇠말뚝이 제거됐습니다. 이 지역 쇠말뚝은 제일 긴 것이 2미터 58 센터미터, 지름 2.5 센터미터나 되는 대형이라는 제 특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거된 쇠말뚝의 상태를 보니 쇠붙이에 문외한인 제 눈으로 봐도 겉면에 녹이 슬지 않고 너무나 생생하고 깨끗한 것으로 보아 최근에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의혹을 무시하고 분위기 띄우기에 급급
쇠말뚝이 너무 새것이라서 혹시 일제 쇠말뚝이 아니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 사람들이 전문가들의 고증을 받은 후에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으나 무시되었습니다. 3.1절 행사에 맞춰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3.1절 전날인 2월 28일, 매스컴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으며 문제의 쇠말뚝이 제거되었습니다. 이 쇠말뚝이 일제의 풍수침략이라는 증거는 '전설 따라 삼천리'나 다름없는 주민 증언뿐이었습니다.
양구에서 제거된 쇠말뚝은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광복 50주년 기념 근대 백년 민속풍물전에 전시되었습니다. 일제가 박은 쇠말뚝이란 증거가 전혀 없는 이 쇠말뚝의 옆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인들은 우리 민족의 정기와 맥을 말살하고 전국 명산에 쇠말뚝을 박거나, 쇳물을 녹여 붓거나 숯이나 항아리를 파묻었다. 풍수지리적으로 유명한 명산에 쇠말뚝을 박아지기 변화를 눌러 인재 배출과 정기를 누르고자 한 것이다.
쇠말뚝 제거 전문가로 알려진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의 구윤서 회장이나 서길수 교수도 전국에서 발견된 쇠말뚝이 일제의 풍수침략용 쇠말뚝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측량기준점(대삼각점)을 쇠말뚝으로 오인
구 회장이나 서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의 쇠말뚝 감정 요청을 받고 몇몇 지역에서 조사 작업에 참여한 결과 군부대가 박은 것, 목재 전주 지지요, 광산이나 산판에서 물건 운반용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일제의 쇠말뚝으로 해 달라고 애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진실을 말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쇠말뚝이 박혀 있다고 제보가 들어온 지역을 조사한 결과, 측량을 위한 기점으로 활용되는 대삼각점, 소삼각점과 주민들이 쇠말 뚝을 제보한 지역이 상당 부분 일치 한다는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이것을 입증해 준 사람이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삼화리의 이봉득 씨입니다.
그는 21세 때인 1938년 무렵 산림보호국 임시직원으로 조선충독부 임정과에서 나온 측량기사 고가주란 사람을 따라 화천, 양구 일대를 돌며 측량 업무를 도왔다고 합니다.
봉우리 정상 등에 설치한 대상각점을 일제가 혈을 지르기 위해 박용 쇠말뚝으로 오해했다고 말했습니다. 대삼각점이란 측량기준점을 말하는데, 머리 부분의 열십자 한가운데 측량기 추를 맞추고 측량을 하는 기점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다음, 토지 조사를 위해 역사상 최초로 근대적인 측량을 하는 과정에서 측량기준점 표식을 전국의 높은 산에 설치했습니다. 나라 잃은 이 나라 사람들은 전국의 산꼭대기마다 들어서는 이상한 모양을 한 막대기를 보고 왜인들이 조선에 인물이 못나도록 혈을 지르고 다닌다"는 소문을 파다하게 퍼뜨렸던 것입니다.
측량기사가 설치해 둔 쇠말뚝
측량기사가 산에 올라가 대삼각점을 설치해 놓으면 주민들은 밤에 산에 올라가 이것을 파내어 망치로 깨부순 다음 여기저기 흩어 놓았다고 합니다. 측량기를 산꼭대기까지 운반하기 위해 마을 장정들을 부역시켰는데, 이 사람들이 산을 오르면서 "왜인들이 혈을 지른 산"이라고 쉬쉬했는데, 이들이 정상에 올라와 대삼각점에 측량 기를 세우는 것을 보면서 "어르신들이 저걸 보고 혈을 질렀다고 착각한 거구나" 하고 허탈해하며 내려가는 것을 수없이 목적했다고 이봉득 씨는 증언했습니다. 쇠말뚝 제거 단체인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의 구윤서 회장도 "쇠말뚝이 박혔다고 제보가 들어온 지역을 가서 확인해 본 결과 측량용 삼각점이 박혀 있는 곳이 많았다 "라고 솔직하게 시인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믿어 왔던 쇠말뚝 신화의 진실입니다.
쇠말뚝 신화는 한국인들의 닫힌 세계관, 비과학성, 미신성이 역사와 함께 오랜 반일 감정과 결합하여 빚어낸 저열한 정신문화를반영하고있습니다. 그 정신문화를 우리는 반일 종족주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속하는 21세기의 한국인이 아직 도 그런 종족주의의 세계에 갇혀 있어서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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