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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육군지원병은 무엇이고 이들은 누구인가?

by 스튜디오윤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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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특별지원병제란?

1938년 2월 23일 일본 정부는 조선인의 황민화와 병력 자원화를 목적으로 칙령 제95호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했습니다. 특별지원병제는 종래 일본 병역법 적용에서 배제되어 왔던 제국신민, 말하자면 조선인과 대만인을 대상으로 병역을 부여하는 일본 최초의 식민지 군사동원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호적법 적용의 제국신민(일본인)에 한정해서 병역의무를 부여하는 속인주의 원칙을 채용했습니다. 조선인의 지원병역은 본인의 자발적 의지에 따른 병역부담으로 징병제의 의무병역과 명확히 구별되었습니다.

1910년 조선은 한일병합으로 제국일본의 일개 지방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인은 일본인에 적용하는 일본 호적법이 아닌 별도의 지역적 혹은 민족적을 갖는 '조선인'으로 규정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조선인은 일제의 신민이 되었지만 정식의 일본 국민은 아니었고, 참정권과 병역의무도 결여한 2등 국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육군특별지원병령 제1조는 지원 대상자를 일본 호적법 적용을 받지 않는 연령 17세 이상 제국신민의 남자'로 규정했습니다. 육군특별지원병은 일본 병역법에서 규정하는 만 17세 이상 만 20세 미만의 일본인을 대상으로 지원병역을 부어하는 '육군현역지원 병'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만 17세 이상, 6년제 보통학교 졸업 이상, 신장 1.6미터 이상의 조선인 남자는 누구나 육군특별지원병 모집에 응모할 수 있었습니다.

 

육군특별지원병의 자격

하지만 지원자 모두가 육군특별지원병으로 선발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지사, 조선충독부, 조선군사령부가 실시하는 신체검사, 학과시 혐, 면접시험이라는 3차에 걸친 엄격한 선발 전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제2차 조선총독부 전형을 통과한 합격자는 일본군 입영에 앞서 조 선총독부 육군병지원자훈련소를 수료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육군병지원자훈련소 입소 와중에 제3차 조선군사령부 전형을 통과한 합격자는 수료와 동시에 병적을 취득하고 일본군에 입영했습니다.

지원병역을 부담하는 이들의 신분과 복무는 의무병역을 부담하는 일본인 징병자와 무차별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거액의 재정지출을 감수하면서까지 육군특별지원병제를 시행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일본은 육군특별지원병제가 조선인의 황민화를 위한 정신적 기반을 확충하는 동시에 아시아에서 일본의 사명을 이해시키고, 천황제 국가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크게 유용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육군특별지원병제를 통해서 동화주의 식민통치 이데올로기의 제도적 완성을 추구했습니다.

반면, 제도 성립의 또 다른 주체였던 국민협회, 동민회, 시중회 등의 '조선인 정치세력'은 육군특별지원병제를 징병제 시행과 연계해 조선인의 참정권을 확보하는 정치적 포석으로 삼고자 했습니 다. 육군특별지원병제는 조선인 사회의 동의와 협력 없이는 성립함 수 없는 식민지 군사동원이었습니다.

 

제국의 첨병, 조국의 간성

그들은 20세기 '전쟁의 시대'에 태어나 일본군에 투신했습니다.

전쟁의 와중에서 육군특별지원병을 지원한다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의 선택이었습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일본 신민이었고, 그것도 참정권과 병역의무를 결여한 2등 국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망국노'라 는 편견과 차별,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지식과 기술, 근면성과 책임감을 체득한 근대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1948년 새로운 조국 대한민국을 건립하고 6•25전쟁기 국제 공산세력으로부터 그 의 조국을 지킴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 성취의 기초를 닦은 공로자 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반일 종족주의가 상투적으로 매도하는 '반민족행위자'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1950년대 '자유인의 공화국'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데 헌신한 애국자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육군특별지원병은 식민지기 일본에 충성하는 '제국의 첨병' 이었지만, 1945년 이후에는 또 다른 조국 대한민국에 진충보국하는 '조국의 간성이었습니다. 육군특별지원병은 자신의 생명과 권리마저 일본에 내맡기는 무기력하고 타율적인 '반민족행위자'만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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