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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탄광 임금대장으로 본 조선인-일본인 임금 조선인-일본인 임금에 관한 자료-1 최근에 제가 발굴한 중요 한 자료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자료는 석탄을 운반하는 운탄부 94명, 곧 조선인 51명과 일본인 43명에 관한 것입니다. 그 94명의 노동과 보수에 대한 1개월의 기록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광부 1인당 1장씩 작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서는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지극히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10시간 노동의 기본급이 조선인은 평균 1원 72전, 일본인은 1원 70전이었습니다. 조선인이 오히려 약간 높았습니다. 큰 차이는 아닙니다. 그런데 월수입은 조선인 평균이 100원, 일본인은 116원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초과 근로시간이 조선인보다 많았기 때문에 8원의 차이가 생기고, 나머지 7원 가량은 가족수당에.. 2023. 10. 13.
조선인의 산업 재해율은 노동수요와 공급이 원인 조선인의 산업 재해율 반일 종족주의에 빠진 노무동원 관계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작업상의 또는 작업배치상의 민족차별'에 대해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산업재해율, 즉 작업 중 사망률과 부상률에 있어서 조선인 쪽이 일본인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1939년 1월부터 1945년 12월까지 사할린을 포함한 일본 본토의 탄광에서 사망한 광부는 모두 10,330명이었습니다. 1943년, 일본 주요 탄광에서의 사망률을 보면 조선인이 일본 인보다 두 배 가량 더 높았습니다. 같은 해, 탄광 광부 중 조선인은 11만 3천여 명이었습니다. 일본인은 22만 3천여 명이었습니다. 군인으로 징병된 일본인들은 모두 청장년층이었고, 이것은 탄광에 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탄광으로부터 징병된 일본인들은 갱외부보다는 갱내.. 2023. 10. 13.
광업기술의 발달과 기계화로인한 차별의 허구성 작업배치부터 조선인을 차별? 반일 종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조선인들을 의도적으로 고되고 위 험한 작업에 배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탄광에서 갱외보 다는 갱내, 갱내에서도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 다시 말해서 탄을 캐는 채탄부, 갱을 파 나가는 굴진부, 갱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목재 등으로 구조물을 만드는 지주부치, 이와 같은 일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배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현장에서의 민족차별론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기를, 일본인들과 같은 자리에서 함께 작업했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각각, 네 명과 세 명, 세 명과 두 명, 이런 방식으로 작업조를 짜서 같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작업하는데, 어떻게 조선인만 어렵고 위.. 2023. 10. 13.
과연 강제노동 노예노동은 있었던 것인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노예처럼 일했다 일제 말기에 적지 않은 조선인이 노무자로 동원되어 일본으로 갔습니다. 위의 소제목은 그에 관한 우리 국민의 상식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강제연행설이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학계의 일반적 의견이며, 국민적 상식입니다. 강제연행설을 처음으로 주장 한 박경식은 많게는 하루 20시간을 일했지만, 임금은 “현금으로 주지 않고 모두 저금" 시켜서 "송금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수 준이었고, 자기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 수준"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임금 자체가 일본인 노동자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탄광의 갱내 노동과 같이 가장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고, 구타, 집단적 린치와 감금이 일상이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강제.. 2023.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