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41 쇠말뚝 신화의 진실_다수결에 의한 결정과 오해 주민 다수결에 의해 '일제가 박은 쇠말뚝'으로 결정 그런데 전 영춘면장이자 현지 주민인 우계홍 씨는 저에게 "그것은 일제가 박은 게 아니라 해방 후에 주민들이 북벽 아래 뱃줄을 묶기 위해 박아놓은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우계홍 씨는 "군청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귀담아듣지 않는 바람에 일제가 박은 쇠말뚝으로 둔갑하고 말았다"라고 허탈해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고 4리 조울재에서도 쇠말뚝이 제거됐습니다. 이 쇠말뚝은 1995년 6월 13일에 발견됐는데, 광복 50주년 기념 이벤트 행사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두 달을 미뤘다가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에 드라마틱하게 제거됐습니다. 제가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해보니 제거된 쇠말뚝은 길이가 볼펜보다 조금 큰 정도였습.. 2023. 10. 26. 쇠말뚝 신화의 신드롬과 진실과 역술인들 쇠말뚝 신드롬 "일제가 조선 땅에서 인물이 나는 것을 막으려고 전국 명산에 일부러 쇠말뚝을 박아 풍수침략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이런 말이 전설처럼 떠돌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일제가 박았다는 쇠말뚝이 모두 가짜라는 사실은 제가 월간조선, 1995년 10 보호에 썼던 「대한민국의 국교는 풍수도참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냈습니다. 이 기사가 보도된 후 독립기념관이 전시하던 쇠말뚝을 치웠는데, 이 내용을 구로다 야스히로 기자가 취재해 산케이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 쇠말뚝 신드롬을 몰고 온 계기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1995년 2월, 광복 50주년 기념 역점추진사업으로 쇠말뚝 제거 사업을 추진하면서였습니다. 그.. 2023. 10. 26. 대한민국 성립 이후 독도의 한국 편입 한국의 독도 편입 마지막으로 1948년 대한민국 성립 후의 경과를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1951년 9월 일본과 연합국 간의 강화조약이 맺어졌습니다. 그 조약으로 일본의 영토 경계가 결정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회담의 주관자인 미국에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분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미 국무부는 주미 한국대사관에 독도가 어디에 있는 섬인지를 물었습니다. 대사관의 직원은 독도의 위치와 내력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1951년 8월 미 국무부는 한국 정부에 다음과 같이 회신하였습니다. 읽으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정확한 대답이었습니다. 독도, 다른 이름으로는 다케시마 혹은 리앙쿠르암 Liancour Rods으로 불리는.. 2023. 10. 24. 환상의 섬 독도-역사적 그 실체를 찾아서 환상 판명 1883년에 개방된 이래 울릉도의 인구는 1900년까지 1,000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일본인도 많이 살았는데, 주로 강치잡이를 위해 서였습니다. 이에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41호를 내려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하고 군수를 파견하였습니다. 그때 군의 영역을 정하기를 “울릉 전도와 죽도와 석도해를 관할한다"라고 했습니다. 죽도는 오늘날의 죽도 그것입니다. 문제는 석도입니다. 그것을 두고 오늘날의 한국 정부나 학자들은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독도 고유영토설을 주장할 때 또 하나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이 석도=독도설이라 하겠습니다. 과연 그러합니까? 그보다 앞서 이 칙령 41호에 의해 우산도가 그 종적을 감추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 우산은 어느 자료에.. 2023. 10. 24. 이전 1 2 3 4 5 6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