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41 강제동원령의 신화 역사의 왜곡과 허구 역사왜곡의 출발 지금부터 서술할 내용은 일제말기, 1939년 9월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약 6년간 전쟁 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을 했던 73만여 명의 조선인 근로자에 대한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노무 동원'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의 연구자들은 동원된 조선인들이 대부분 일본 관헌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고, 다시 말해 '강제동원'되었 다고 주장합니다. 또 일본에서 노예처럼 혹사당했다고, 즉 '노예노동'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밤에 잠자고 있는데, 논에서 일하고 있는데, 헌병순사가 와서 일본으로 끌려가 죽도록 일만 하고 짐승처럼 학대를 당하다가 돈 한 푼 못 받고 돌아왔다"는 주장입니다. 1965년, 일본 조총련계 조선대학의 교원 박경식이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일제가 잔혹하게 조선.. 2023. 10. 13. 식민지 조선 경제의 변화 경제성장률 식민지 조선 경제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러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식민지 조선 경제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장기통계를 추계한 최근의 연구 성과에 의거해서 몇 가지 그래프를 가지고 설명하고자 합니다. 해방 전에 나타난 변화를 해방 후와 비교하여 어느 정도인지 가능할 수 있도 록 지난 100년간의 추이를 제시했습니다. 행방전후 조선경제 성장률의 비교 첫째, 수출과 수입이 국민총소득이 대비로 어느 수준 인지를 보여 줍니다. 수출 또는 수입의 의존도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에 따르면 일제시기에 10%에서 30%로 빠르게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해방 후 고도 성장기의 수출 의존도 상승에 맞먹는 속도였습니다. 해방 후는 공산품의 수출이 고도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였음은 .. 2023. 10. 13. 식민지 조선의 경제 통치방식과 정치 통치방식 식민통치경제 식민 통치 경제에 관해서는 「일제의 식민 통치와 경제 수탈」이라는 장을 두어 다루고 있는데, 모든 곳에서 수탈이 자행된 것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선인의 토지를 '수탈' 하고,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여 쌀도 '수탈'해 갔다고 합니다. 그 외에 조선회사령을 시행하여 조선인 민족자본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억압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국사학계를 대표하는 학회의 회장까지 지낸 한 연구자는 이 시기에 조선으로부터 '유출'되거나 '수탈된 자금의 규모가 국내 총생산의 80%가 넘었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조선경제는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을 것은 물론, 조선인의 생존 자체가 불가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들에 .. 2023. 10. 13. 쌀의 수출과 수익증가 그러나 가난한 농민들 쌀은 수탈된 것이 아니라 수출되었다 조선미의 일본 유입이 일본의 쌀값을 압박해 왔다는 점, 그리고 일본 농민이 조선미의 일본 유입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에 대해『동아일보」는 조선 농민의 입장에서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조선미의 일본 수출이 제한되면, 판매처를 잃은 조선미 가격은 더욱 크게 떨어질 것이고, 조선의 농민이 막대한 손해를 입을 것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거꾸로 보면, 일본이라는 쌀의 대규모 수출 시장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쌀 생산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쌀값은 불리해지지 않았고, 그것이 조선 농민의 소득 증가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시를 살았던 조선의 농민이나 언론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당연한 상식입니다. 이에 대해 일제가.. 2023. 10. 13. 이전 1 ··· 6 7 8 9 10 11 다음